로그인 회원가입

홈 >
통일아리랑축제 >
아리랑이야기

아리랑 이야기

한민족의 정서를 대표하는 아리랑

아리랑은 한민족의 정서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우리 삶의 희로애락을 간직한 노래이자 민족이 함께 숨 쉬는 숨결 같은 노래다. 언제 어디서부터 불렸는지 그 기원이 정확하진 않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나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우리 민족 화합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마침내 2012년 12월 5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의 등재, 아리랑이 갖는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아리랑의 시작

우리 민족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왔던 아리랑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최초의 아리랑과 관련된 문서는 1756년에 나왔지만, 노래가 만들어진 것은 그보다 수 세기 전이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조선시대 초에 지금의 운율 구조가 나왔고 이보다 앞서 고려시대 ‘청산별곡’의 후렴구인 ‘얄리, 얄라셩’이 ‘아리 아리랑’이 되었다는 것이다. 영어 간행물인 『KOREA Repository』의 1896년판에서 Homer B. Hulbert가 쓴 기사에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알영정에서 용으로 태어난 아내 알영을 기리는 노래를 만들었는데, 알영에서 ‘아리랑’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저항의 노래, 아리랑

아리랑은 조선후기 들어서면서 저항적인 성격이 강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 큰 변화의 시기를 맞았는데, 일제 탄압에 의해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고통을 겪으며 부당한 현실의 한을 노래했다. 당시 아리랑은 민족을 단결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이때 나온 것이 바로 나운규의 ‘아리랑’이다. 1926년 10월 1일 단성사에서 상영된 영화 ‘아리랑’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영화 주제가였던 ‘신 아리랑’이 오늘날 전 세계에 알려진 ‘본조 아리랑’이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저항 영화 제1호라고 할 수 있다.

아리랑의 민속성과 집단성

아리랑은 일차적으로 전통민요지만 구술과 암기에 의해 전승되고 자연적 습득 등이 특징이다. 이외에 지역공동체집단의 소산이라는 민속성과 집단성이다.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 간다’거나 ‘감발을 하고서 백두산 넘어 북간도 벌판을 헤매 인다’ 또는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 삼천리 강산만 살아있네’처럼 몇 가지 노랫말을 나열해놓는 것만으로도 ‘아리랑’이 근세의 민족사를 반영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뗏목꾼은 뗏목꾼대로, 광부들은 광부들대로 또 다른 그들마다의 애환을 아리랑에 담았다. 직업공동체나 사회공동체의 이른바 문화적 독자성이 아리랑에 담기는 것이다.

민족의 동질성을 지탱하는 소리

민족이 위기에 처하면 아리랑은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소리였다. 아리랑은 거시적으로 민족의 독자성에 이바지하였으며, 그보다 작은 규모의 지역공동체나 이익공동체의 독자성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다. 아리랑은 체념의 하소연인 듯 하지만 강한 삶의 의지의 표현이다. 모가 난 말 싸움인가 하면 익살떨기의 넉살이기도 했다. 구시렁거리는 불만인가 하면 지독한 악담이요, 욕이요, 쌍소리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아리랑은 다양한 목청과 소리 투로 그 휘장을 노래한 것이다.

한민족을 닮은 노래

한국의 문학사와 예술사에서 단일한 민요의 소재로 아리랑만큼 질기고 굵은 맥을 지켜온 사례를 보기 힘들다. 그것도 사회와 시대의 변화를 증언하면서 주제사적 문제까지 제기하는 예를 달리 구하기 어렵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반만년의 역사를 지켜온 한민족과 닮아 있다. 긴 생명력과 함께 예술성을 갖춘 이리랑. 그래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단법인 한국의 소리 숨